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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어른이 된다고 하는 '어려움'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잃지 않은 채로, 무언가를 얻으며 살아 간다.


무엇 하나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 간다.


그런 인생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훌륭한 것일까.


「후우...」


한숨과 함께 토해낸 담배 연기는 천천히 올라간 뒤, 이윽고 사라져 갔다.


눈 앞에는 산더미같이 쌓인 책과 서류.


이것들과 씨름한지 몇시간정도 된 것일까.


쉬는 날인데도 일에만 쫓기는 나날들.


그렇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 빨리 끝내자.


내일 수술 일정은 없지만, 그래도 공부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엄중함의 무게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꺼트릴 수도 있다.


그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면, 환자에게 있어서 그 의사는 신과도 같다. 그렇다해도 나는 그런 소리는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의학을 배운지 얼마 안된 26, 7세의 햇병아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데다가,


오히려 자신이 사신과도 같다는 생각마저 느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내가 집도하는 부분이 단 1밀리라도 어긋난다면 환자에게 찾아오는 것은, 죽음이다.


「하하, 사신..이네」


나답지 않은 생각을 했다.


그만두자, 하던거나 해야지, 계속 해야해.


담배를 거칠게 재떨이에 비벼 끄고, 다시 다른 담배에 불을 붙인다.


펜을 들고서 의학 서적에 눈을 향하려고 한 그 때,


「담배는 줄이라고 했잖아.」


「올 때는 연락부터 하라고 말했었잖아. 니코 」


등 뒤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는 니코의 목소리.


조심스럽게 들어온 걸까, 아니면 내가 눈치 채지 못했던 걸까. 문을 잠그지 않았던가? 아니 자동 잠금은 어떻게 된거지.


아무튼, 이 사람이니까 어떤 일을 했다고 해도 새삼스럽게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일단 의자를 돌려서 니코가 있는 쪽으로 향하니, 예상대로 뭔가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는 니코가 있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았던 마키가 나빠」


「어제까지 계속 연속근무를 해서 피곤했었어」


「변명은 좋으니까, 그것보다 담배부터 좀 끄라구」


「네 네, 끌게요. 그런데 뭐하러 온거야? 연예인이 이런 곳까지 오고」


「마키를 만나러 온 게 당연하잖아. 하아, 창문 열게... 환기도 안하고, 담배 냄새 지독해」


니코는 나의 비아냥거림을 귓전으로 흘리면서, 총총걸음으로 창가에 가서 커텐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오후의 눈부신 햇살이 방으로 스며들어, 아직 희미하게 연기가 감돌고 있는 방을 비추었다.


「아직 점심도 제대로 안 챙겨먹었지? 간단히 먹을거 만들어줄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가져온 가방을 가리키며 내게 말한다.


말했던대로, 아직 아무것도 안먹었으니까 고맙지만.


「그것때문에 온것만은 아니지, 니코?」


「...들켰어?」


「우리가 몇년동안 사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거야.」


책상 위에 있는 사진을 바라본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건가.


「저기, 노래 만들어줘」


「...」


「또, 노래 써달라구」


「......정말, 그럴 시간없어」


「계속 기다릴테니까」


「이제 안 써. 아니, 쓸 수가 없어.」


등을 돌린 채 이렇게 대답한다.


더 이상은, 쓸 수가 없다.


어느새인가 곡을 쓸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옛날처럼, 오히려 이제와서야 곡을 쓸 수가 없게 된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곡을 쓸 수 없다고 깨달은 것은 인턴이 끝나고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그때도 마침 니코에게 곡을 써달라고 부탁 받았었는데, 그 때 깨달은 것이다.


――지금의 나는, 분명히 빈 껍데기인 것이다.


「...피아노, 얼마나 연주하지 않은거야?」


「모르겠어」


「최근에 카메라로 뭔가 찍은 적은 없어?」


「기억 안 나」


「망원경으로 별을 본 건 언제가 마지막이야?」


「아주 옛날에」


「... 마키..」


「바빴으니까..」


니코가 입을 다문다.


「바빴을 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바빴었을 뿐.


정말 그 뿐이라고 자신을 타이른다.


―――갑자기 예전의 그 날과 같다고, 지금으로부터 아득한 날의, 저녁 때가 머릿 속에 떠오른다.


그때는 포기 따위 하지않았었지만, 지금은 포기가 아니라 그 이상의―――


「마키」


「...」


「마키쨩」


「읏..」


그리운 호칭에 약간 놀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의자가 이쪽을 향했다고 생각한 순간, 이 입술에 느껴지던 부드러운 감촉을.


아아, 정말 그립다.


부드러움도, 니코의 향기도, 따스함도.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눈 그 날부터, 아무것도.


하지만, 나는.


「뭐하는거야. 우리는 이제 더 이상...」


「...」


「... 헤어지고 난 뒤, 몇 년 지난걸까」


「5년이야」


니코의 스캔들 특종 기사가 났을 때, 헤어졌다.


그다지 정확하지도 않은 날림기사였지만, 그것을 계기로.


서로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었다는 것과, 동성간에 교제를 하는 것의 '무게'를 재차 인식해버렸기 때문.


병원이라는 길도 이어야 하며, 나도 내 길을 이어야 만 한다.


그것은 즉 나도 후계자를 낳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으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다.


무엇보다도, 그렇다고 해서 결혼 상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니코와 헤어진 뒤에도 이렇게 가끔 만나기도 했었고.


「꽤나 많이 변했네, 마키」


「그거야 뭐, 5년이라는 세월이라면 모두 다 변한다구. 알고 있는 주제에」


「그래서, 뭔가 얻은건 있어 ?」


「음, 의사 자격을 얻고 꿈을 이뤘어」


「그러면, 잃은 것은 ?」


「―――」


잃은 것.


그런건...


「별로, 일일히 세는건 그만 뒀어.」


더이상 헤아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었다.


만날 수 없어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지탱해주던 사람을, 내 자신이 져버리고 말았다.


「몇갠지 알아도, 후회한다 해도, 결코 득이 될게 없잖아?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하는 편이 좋다고, 그렇다고 생각해」


그래서 이제 나는 헤아리는 것을 그만뒀다.


5년 전의 그날부터.


가장 소중한 것을 스스로 잘라내버린 그날부터.


나에겐 더 이상,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꿈을 이뤘다, 라는 사실만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고 더 이상 버팀목같은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 필요없다.


더이상, 잃지 말아야 할 것 따윈 이제 없다.


「후회하진 않았어 ?」


「후회한다고 해도, 소용 있어?」


「니코는, 후회하고 있어.」


「... 그래」


무엇을 ? 이란건 묻지 않는다.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다시 함께 할 수는 없다.


이미, 우리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이젠..


「저기, 마키」


「왜」


「니코, 계속 머리가 아파」


「응?」


「계속 어떤걸 머릿속에 떠올리면 머리가 아파 와. 말끔해지지도 않고, 가슴까지 아파 와.」


「...」


「의사라면, 치료해줘.」


니코가 내 손을 움켜쥐고는 왼쪽 관자놀이 근처로 가져갔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내 심장이 박동한다.


아아, 정말, 이것도, 그 날과 같아――


「좋아해」


「..읏」


「어떻게 해봐도, 잊을 수가 없었어. 이 5년 사이에 남자 친구도 만들어봤어. 그래도, 니코는, 마키가 좋아」


니코가 움켜진 내 손이, 아프다.


그만큼 니코는 필사적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치료 방법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난 5년전과 달라. 니코가 알고 있었던, 내가 아냐.」


담배도 피기 시작했다.

피아노도 칠 수 없게 되었다.

카메라도 다루지 않게 되었다.

망원경도 들여다 보지 않게 되었다.


노래를,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완전히 「포기한 것」 이 아니라 완전히 「잘라내버리고」 말았다.


「지금의 난 빈 껍데기야. 사랑을 받을만한, 그런 인간이 아냐.」


니시키노 마키라는 인간을 죄어오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이 사라졌음에 분명하다.


지금의 나는 니시키노 마키라는 겉모습뿐인, 의사가 되었다는 것뿐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가 되었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이,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증거인 것 이다.


 「그러니까...」


 「그렇다면, 니코가 빈 부분을 채워줄게.」 


내 말을 가로막고 있다고 깨닫자, 어느새 힘껏 잡아 당겨 ―― 정신차리고 보니 니코가 나를 바닥에 쓰러트려, 그 위에 올라타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여전히 작고, 가볍다.


정말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잊고 있었다면, 다시 떠올리게 해줄게. 이 5년 사이의 일들도 얼마든지 보상해줄게. 아무리 힘들었던 일들도, 보상해줄게.


그것도 모자란다면, 마키가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은퇴를 해도 좋아. 전부, 니코가, 채워줄게.」


니코의 손이 내 왼쪽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러니까, 마키...」


한 방울, 두 방울씩 물방울이 내게 떨어진다.


두 말 할 것도 없는, 니코의 눈물.


아아, 울려버리고 말았다.


우는 얼굴 따위 보고 싶지 않았는데.


항상 나는.


전부터.


――그 날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어」


「에... ?」


「변하지 않은 것, 아직 나에게도 남아 있었어.」


담배를 피게 되어도.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어도.

카메라를 다루지 않게 되어도.

망원경을 들여다 보지 않게 되어도.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어도.


「뭔..데 ?」


「웃어줘, 니코쨩」


그래도, 그때와.


그 시절부터 변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


「――흣」


니코가 눈물을 훔쳐내고서 웃었다.


그래, 변하지 않는 것.


아직 나에게 남아 있는 것.


「니코의 웃는 얼굴을,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도, 좋아해. 」


단 하나의 간단한 사실이었다.


특별히 싫어져서 헤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도망치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버렸다, 라는 말을 하면서 도망치고 있었다.


단지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된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으로 있었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것이 어른이라는 생각조차 했다.


가업을 잇는 것도, 주위의 압박도, 책임도 사명도,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라고 핑계를 대고 있었다.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사람과, 니코와 함께 살아가기로 할 각오가.


그래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이제, 끝내자.


「5년간 내가 잃었던 것, 다시 채워줄꺼지 ?」


끌어당겨, 니코를 꼬옥 안는다.


그러니, 울었다가 다시 웃으면서,





「오늘 중으로, 다시 채워줄게 !」


라고 말하며 입술을 거듭해서 겹쳐왔다.


내일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조차 하면서, 5년만에 니코의 피부의 온기를 느꼈다.


「저기, 마키」


「응?」


「피아노 연주해줘」


「...오랜만이니까 실수할지도 모른다구?」


「괜찮으니까, 연주하면서 노래해줘」


「정말... 그러면, 어떤 곡이 좋을까?」


「그런거... 마키라고 하면 바로 그 곡이잖아 ?」


「응?」


「사랑해 만세 !」